안녕하세요, 저는 10년차 큐레이터 멘토입니다.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전시 이력을 시작했고,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의 전시 공간에서 책임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그림을 좋아해 작가나 디자이너 같은 창작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대 입시에 실패하면서 제가 진짜로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미술학원과 집, 학교만 오가던 학창 시절의 일상 속에서 그런 걸 발견하기란 쉽지가 않았죠. 그래서 일단 광범위하게 여러 학문을 접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인문학부에 진학했죠. 미학이나 예술경영 이론과 같은 학과 수업을 듣다 보니,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자주 데려가 주시던 미술관에서 일하는 건 어떨까, 막연한 장래희망이 생겼습니다.

이후 예술경영 석사 과정으로 공부를 이어가면서, 도슨트나 전시장 지킴이 같은 아르바이트로 현장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하얗고 깨끗한 전시장 안에서 작품을 즐기며 작가와 친구가 되는, 그런 직업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본격적으로 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치열한 경쟁률(무려 100:1)을 뚫고 현재의 직장에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입사하면서 '이제 꿈을 이뤘구나' 싶었죠.

하지만, 아름다운 작품이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전달되기까지, 준비현장은 정말 긴박하고 치열했습니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의 큰 그림을 모른 채, 선배들이 시키는 단순 보조업무(자료 복사하기, 도록 오타 찾기, 작가들에게 전화돌리기, 작품 철수 후 못구멍 퍼티질하기 등등)만 하다보니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자격증 땄나'하는 생각들이 절로 들었죠. 비슷한 생각으로 동기들이 하나 둘 퇴사하기 시작하고, 후배들도 3개월 수습기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죠.

이런 와중에도, 저는 그림이 좋고, 새로 만나는 작가들이 좋아 그만두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더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설정하지 못한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심정이었달까요), 전시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어느덧 전시 실무 전 과정을 총괄하는 책임 큐레이터가 되었습니다. 이 분야의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이나 예비 큐레이터 대상의 특강 기회들이 있었는데, 그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전시가 만들어지는 전체 과정을 알고 있었더라면, 사소하고 잡무 같아 보였던 그 일들이 그 과정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퍼즐 조각이라는 걸 당시에 알았더라면,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현장에서 저에게 주어졌던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큐레이터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하는지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아가 '큐레이터로서의 행복' 같은 소소한 인생팁을 덧붙여, 현장에서 만날 여러분들을 응원하고 싶습니다.